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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답답해지는 이야기

"경영 잘한 것으로 보이는 박스는 뺍시다"-감사원, 정권 하수인임을 스스로 고백

감사원이 어떻게 거짓과 왜곡을 자행했는지에 대해 지난 두 번의 증언에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명박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감사 전문집단'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그 생 얼굴의 한 부분을 보았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회의 모습?

 

자, 그럼 다시 KBS 특별감사를 착수하기로 결정한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의 그 회의장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육성을 계속 들어 보자. 지난번 마지막 으로 다룬 부분에서는 'KBS의 3천억 원 청구권'과 '2005년 345억 적자'를 강조하면서 '부실 경영'이 감사 실시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하는 감사원 실무자의 주장이 있었다. '부실 경영' 문제에 대해 일부 심사위원들은 구체적 사례가 없다며 반대 의견도 밝혔다. 그러자 이 회의를 주도한 심사위원의 말이 이어진다.

 

000 : (특별감사 실시를) 인용(승인)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의견이 갈리는 것 같은데 이런 때는 어떻게 결정을 하는 것입니까. 전원일치입니까, 만장일치는 아니지요?

000 : 전원일치는 아닙니다.

000(감사원 실무자로 보임) : 000으로서 한번 보완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까 000 위원님이 말씀해주셨지만, 방송사의 내부 부실경영에 대한 구체적인 방편을 가지고 문제 제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검토가 안 되었기 때문에...그래서 000 위원님이 아까 말씀하셨듯이 구체적인 팩트가 여러 개 있으면 부담 없이 결정을 하실 수 있겠다고 저도 개인적으로 생각은 하지만, 현재의 여건에서 자료가 공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또 방송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구체적인 사실이 여러 가지 나오기는 힘들 것입니다...전체적으로...전반적으로 여기서 저희가 검토를 이번 기회에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 것이고...이번 기회에 KBS의 부실 경영 문제는 감사원에서 볼 필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000 : 감사하면서 아예 민영화시켜버리죠. EBS 하나 정도만 놔 두고 다 민영화시켜 버리죠.

 

일부 심사위원들이 '부실 경영'의 구체적 증거가 부족하다면서 비판적인 의견을 내자 감사원 실무자는 구체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전반적으로" 그냥 한번 해보자고 했다. 이처럼 이 감사원 실무자는 구체적 증거가 있건 없건 관계없이 '감사 실시'라는 정해진 방향으로계속 회의를 몰아가고 있었다.

 

000 : 어떻습니까. 감사를 하자는 의견과 (그렇지 않은 의견이...) 내가 보기에, 느낌이... 000 위원님도 감사를 해 보자는 입장 아닙니까.

000 : 부실 경영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000 : 부실 경영에 대해서. 그러면 벌써 하는 쪽으로 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수적으로 해야 되니까, 우리(심사위원)가 모두 7명이니까, 벌써 네 분 정도가 찬성이니까...그러면 감사 인용(승인)으로 결정해도 되겠습니까.

000 : 예. 그런데 (자료에 제시된) 박스, 이것은 나중에 보도 자료 내실 때 뺐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위에서 내려 온 논리에 별로 안 맞습니다. 박스를 좀 빼주시고...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정연주 사장 경영 잘 했네라고 보이는 박스입니다.

000 : 그렇죠?

000 : 예.

000 : 70 페이지하단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000 : 마이너스로 쭉 있다가 좋아진 것 아닙니까?

000 : 예, 알겠습니다.

 

  
2008년 10월 6일 오전 서울 삼청동 감사원 별관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감사원의 KBS감사와 관련된 의혹과 관련해서 국민감사청구심사위 회의록을 보며 질의하고 있다.
ⓒ 권우성
KBS감사의혹

"정연주 사장 경영 잘 했네라고 보이는 박스 빼시오"

 

어이가 없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회의 모습 같다. '동물 농장'에도 '7계명'이 있었지. 7계명의 첫 번째 계명이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였다. KBS 국민감사를 결정하는 심사위원회에서는 "KBS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안 된다"였다.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라고 외친 '동물농장'의 계명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이게 위에서 내려 온 논리에 별로 안 맞습니다. 박스를 좀 빼주시고...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정연주 사장 경영 잘 했네라고 보이는 박스입니다"라는 발언에 이르면 그들 스스로 정권의 하수인이 된 것을 고백하는 꼴이다.

 

"위에서 내려 온 논리"가 무엇이었을까. 정연주를 해임하기 위해 감사원 특별감사가 필요했고, 그 특별감사를 하기 위해 '부실 경영' 등의 이유를 들어 감사 결정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아니었겠는가.

 

그렇다면 그런 논리를 지시한 "위"라고 지칭한 그 빅 브라더는 누구인가. 방송 장악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지휘한 세력이 분명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사원, 검찰,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권력기관과, 심지어 KBS 이사회와 교육과학부, 대학까지를 모두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빅 브라더가 내려보낸 논리가 있었을 것이고, 그 논리에 맞지 않는 도표가 등장하니 보도자료에서 그 도표를 아예 빼자고 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적이다"를 첫 번 째 계명으로 내건 '동물농장'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럼 도대체 무슨 박스(표)가 "위에서 내려온 논리에 맞지 않"게 보였는지, 그래서 "이렇게 되면 정연주 사장, 경영 잘 했네"라고 보이게 했는지 한번 보자. 그 표는 위의 발언에서 나온 것처럼 회의 때 사용한 자료 70쪽에 있는 것이다. 그 도표는 아래 있는 경영 실적표이다.

 

 

바로 이 표가 심사위원이 보도자료에서 빼자고 주장한 도표(박스)이다. 2004년에 638억 원 적자였는데, 2004년 이후 2005, 2006년에 잇따라 흑자로 돌아 서서 경영이 호전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지난 <증언16>에서 밝힌 바도 있지만, 감사원은 도표를 만들 때, 흑자가 발생한 취임 첫해인 2003년 자료는 아예 집어넣지도 않았다. 그리고 세금 환급액은 밝혔으나, 정작 해마다 2001년 세무조사 결과로 나온 법인세 추징금 납부액은 밝히지 않았다. 이 도표만 하더라도 제 입맛에만 맞게 숫자를 이리 저리 꿰어 맞추고, 삭제하고, 첨부하는 등 갖은 장난은 다 쳤다. 그런데 이 도표조차도 "정연주 사장 경영 잘 한" 것으로 보인다며 없애라고 했다.

 

  
KBS 사장 재임시절 회사에 1,892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불구속 기소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이 2009년 8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정연주

소시지 제조과정 같은 통계 작업

 

이처럼 숫자와 통계를 가지고 수작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문득 미국의 어느  통계학자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야기 내용은 이렇다. 통계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은 마치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한 방에서 까만 고양이를 찾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통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마치 소시지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결코 먹지 못한다. 소시지는 생선이나 고기에서 내장 등 버리다시피 하는 부위들을 갈아서 만들기 때문에, 마지막 소시지 제품은 맛이 있지만, 그 제조 과정을 들여다보게 되면 지저분한 부위가 많아 소시지를 먹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통계도 그 만드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마지막으로 나오는 '깔끔한' 결과처럼 그렇게 깔끔하지가 않고 지저분하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전한 통계학 교수는 통계가 이런 한계와 문제점이 있는 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경고했다. 통계학에서 다루는 여러 가지 기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소시지 맛만 가지고 이러네 저러네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어쨌거나 감사원도 도표 하나를 만드는 일에서조차 소시지 만들 듯 지저분한 공작을 했고, 그 공작 끝에 나온 도표조차도 "위에서 내려 온 논리에 잘 맞지 않는다"며 보도자료에서 빼버렸다.

 

그렇게 심사위원회는 '감사 실시'라는 정해진 방향을 향해 힘차게 진군하고 있었다. 결국 심사위원회는 2008년 5월 21일, 뉴라이트 3개 단체에서 국민감사를 청구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전광석화처럼 KBS에 대한 특별감사 실시를 의결했다.

 

이 증언에서 인용된 국민청구감사 심시위원회 회의록은 전체 회의록이 아니다.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2008년 가을 국정감사 때, 민주당 의원들은 이 회의록과, 8월 5일 감사 보고서를 채택한 감사위원회 회의록의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를 거부했고, 이 증언에서 일부 내용이 밝혀진 국민감사청구 심사위원회 회의록의 경우, 발언자 이름을 삭제한 채 부분적인 열람만 허용했다. 감사원이 왜 그렇게 회의록 내용에 민감해 하면서 공개를 거부하는지, 독자 여러분들은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동물농장' 같은 회의 내용이 공개되었을 때 어떤 파장이 있을지 그들 스스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