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세상이었으면

연두색 배낭에 도시락... 원순씨, 북한산에 떴다


[현장] 박원순 서울시장, 시민 20여 명과 북한산 '번개팅'
12일 북한산 '번개산행'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등산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홍현진
박원순

약속 시간 4분 전인 오전 9시 56분.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타났다. 회색 피켓 셔츠에 남색 점퍼,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딸이 쓰던" 연두색 배낭.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20여 명의 시민들을 본 박 시장은 "많이 오셨네요"라며 활짝 웃었다.

전날(11일) 박 시장은 <오마이뉴스> 주최로 열린 '박원순 시장 당선 뒤풀이 콘서트'에 깜짝 출연해 "내일(12일) 북한산 '번개팅' 하자, 오전 10시에 구기동 이북5도청 입구에서 만나자"고 즉석 제안했다. 박 시장은 "제가 주말에 일하니까 공무원들이 쉬지를 못한다"면서 "쉬려고 왔다"고 전했다.

9살 어린이 손 꼭 잡고... 수행원 한 명 동행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 20여명과 함께 북한산 '번개산행'을 함께했다.
ⓒ 홍현진
박원순

백두대간을 종주한 '등산 마니아'답게 박 시장은 '날다람쥐'처럼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박 시장은 "안철수 교수를 만나기 전날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내려왔으니까 2달 만에 처음으로 산을 찾았다"면서 "그새 단풍이 지는 줄도 몰랐다"고 감회를 전했다. 박 시장은 "(이북5도청에서 비봉까지) 북한산 이 코스만 수백 번은 왔다 갔다 했을 것"이라며 "매년 일 년에 두 번씩 지리산을 종주했는데 올 연말에는 제야의 종소리 타종식 참석 때문에 지리산에서 일출을 못 볼 것 같다"고 말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산행 내내 박 시장의 옆은 수행비서가 아닌 시민들이 지켰다. 박 시장의 팬클럽인 '박원순과 함께 꿈꾸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엄마와 함께 북한산을 찾은 재승(9)이는 박 시장의 손을 꼭 잡고 산을 올랐다. 희망제작소 시절부터 박 시장을 수행해온 비서는 먼발치에서 박 시장과 시민들의 모습을 가끔씩 카메라에 담을 뿐이었다.

전날 '당선 뒤풀이 콘서트'에 참석했다가 '번개팅'까지 오게 됐다는 박아무개(43)씨는 "수행원들이 많으면 불편했을 텐데 시장님 옆에 가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전했다.

박 시장을 발견한 시민들은 "어머, 시장님 아니세요?"라면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박 시장 역시 스스럼없이 다가가 대화를 나눴다. 이날 박 시장은 시민들과 수십 번의 기념촬영을 했다. 자녀와 함께 산을 찾은 시민을 만난 박 시장은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산에 오는 게 참 좋다"면서 "애들은 무조건 놀아야 한다, 저희 부모님도 어릴 때 제가 공부하면 몸 상할까봐 걱정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절대 공부하지 마, 알았지?"라고 당부했다.

"요즘 박원순 시장 뉴스 보면 하루하루가 즐겁다"

12일 북한산 '번개산행'에서 초등학교 1학년 유림이가 박원순 서울시장의 머리에 낙엽을 꽂아주고 있다.
ⓒ 홍현진
박원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박 시장은 "앞으로 꿈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고양시 일산에서 온 유림(8)이가 "가수"라고 하자, 박 시장은 "가수? 내가 사인 받아놔야 하는 거 아니야?"라면서 "노래 한 번만 해볼래?"라고 부탁했다.

유림이가 "개울가에 올챙이 한 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라며 '올챙이송'을 부르자, 박 시장은 "대중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용기가 있네, 너 텔레비전 나올 거야"라며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아버지 주봉철(39)씨는 "시장님 덕분에 오늘 유림이 데뷔했네요"라고 웃어보였다. 월차를 내고 '당선 뒤풀이 콘서트'에 참석했다는 주씨는 "직접 만나보니 옆집 아저씨처럼 편하고, 그러면서도 카리스마도 있고... 서울시민들이 부럽다"면서 딸과 박 시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박 시장이 상임이사로 있던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하는 '퇴근 후 렛츠' 동기 모임은 이날 박 시장의 산행소식을 듣고 관악산에서 북한산으로 산행코스를 바꿨다. 희망캠프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는 윤용찬(42)씨는 "요즘 박원순 시장 뉴스를 보면서 하루하루가 즐겁다"면서 "아이들 무상급식해 주고, 힘든 사람들 도와주고, 투표가 최고의 재테크라는 걸 깨닫고 있다"고 뿌듯해 했다.

이날 '번개팅'에는 박 시장의 '팬'뿐만 아니라 '민원인'도 참석했다.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며 시청에서 점거농성을 하기도 했던 김아무개씨는 박 시장에게 뉴타운 사업의 심각성을 거듭 설명했다. 박 시장은 민원을 '접수'하면서 "너무 많은 민원이 쏟아져서 이것을 합리적으로 잘 조정하는 게 시장이 할 역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낮 12시께 비봉에 올라간 박 시장은 배낭 안에서 단골집에서 사왔다는 '전'과 김밥 몇 줄을 꺼냈다. 미처 도시락을 준비해 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건넨 박 시장은 참가자들과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었다. 오후 1시 30분께, 산행을 마친 박 시장은 다음 '번개'를 기약하며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났다.

12일 시민들과 북한산 '번개산행'을 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등산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홍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