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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뜨꺼워지는 이야기

'새 역사의 시작'… 남북이 손 맞잡고 MDL 함께 넘었다


27일 11년 만에 다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는 한반도 비핵화, 군사적 긴장완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정착, 남북관계의 담대한 진전 등 3가지다.

3가지 의제지만 비중이 같은 건 아니다. 정부는 이 중에서도 비핵화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비핵화 문제에 돌파구가 열려야 실질적인 평화정착이 가능하고 남북관계도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핵화 문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북한 측도 중요한 의제로 생각하고 회담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2000년 1차,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는 비핵화가 핵심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제네바 합의(1994년)와 북핵 6자회담 9.19 공동성명(2005년)이라는 별도 틀 속에서 비핵화를 다루는 트랙이 남북 협의체와 따로 존재했다. 게다가 북한이 핵과 관련된 사안은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해온 데다 지금처럼 북한의 핵 능력이 위협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된 지금은 비핵화가 다른 모든 의제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1·2차 남북정상회담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북한을 상대로 한 한·미의 릴레이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핵실험 ICBM
어떤 비핵화 합의 이뤄질까

비핵화에 관련해 일단 상황은 긍정적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 미국 등 3국 정상들의 입에서 긍정적 메시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시험발사 중단을 선언했다. 이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한 ‘비핵화 사전조치’에 대한 적극적인 화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즉, 핵 동결의 입구로 평가되는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 중단에 이어 ICBM 발사 중단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 제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비핵화 담판을 지을 환경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을 거두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한 데 이어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선언 직후 트위터에 "북한과 전 세계에 매우 좋은 뉴스로 큰 진전"이라는 글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9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에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고, 우리에게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북미 간 적극적인 대화 의지 속에서 회담을 준비하고 있고, 회담 성공을 위해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는 성의를 서로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고 오로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 종식과 안전보장을 말할 뿐"이라고 해 남북미가 오롯이 내세우는 비핵화라는 큰 틀의 합의 자체가 무난할 것임을 내비쳤다.

다만 비핵화 논의를 더 구체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비핵화 상응 조치로 요구하는 체제 안전 보장 조치들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다.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의 비핵화 추진 합의나 선언이 이뤄진 뒤 5월 말이 나 6월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방안이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메워야 할 간극도 존재한다.
'핵 없는 한반도’가 비핵화 협상의 출구라는 데에는 한국과 북한 미국까지 이견이 없다. 쟁점은 이행 방법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으로 불리는 일괄타결 프로세스를 강조하면서 '비핵화 이전에는 보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모토로 세분화한 비핵화 단계와 그에 따른 보상을 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전략은 ‘단계적 포괄적 접근’이다. 정상끼리 비핵화 관련 교환 패키지에 대해 한꺼번에 합의한 뒤 실무 차원에서 이를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간다는 개념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통해 과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도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논의와 관련해서 낙관적 전망이 많았지만, 신중론도 적지 않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가 실질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 것"이라며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심도 있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반면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체제를 보장하면 비핵화하겠다는 조건부 식으로 입장을 밝힐 수는 있겠지만, 우리 측이 원하는 수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수준의 합의 도출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두 번째 의제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비핵화와 연관돼 있다. 비핵화에 대한 전진이 있어야 평화체제 구축도 단계적으로 진척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종전선언 추진과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신뢰 구축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평화체제 구축에 따로 정해진 방법은 없다. 종전선언을 통해 곧바로 평화체제로 진입할 수도 있고, 별도의 평화협정 체결이나 전쟁 당사국 간 수교가 수반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한·미는 종전선언이 평화체제 구축의 입구가 될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그들(남북)은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19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65년 동안 끌어온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가 이처럼 입을 맞춘 듯 종전선언 이슈를 띄운 것은 물밑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상당 부분 확인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DMZ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도 중요한 요소다. 남북이 최전방의 대북확성기 등 선전활동을 중단하고 관련 수단을 제거하는 내용도 논의될 수 있다. 이미 우리 군은 지난 23일 최전방 지역에서 운영 중이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함으로써 선제적으로 평화 분위기를 조성했다. 북한도 이에 호응해 대남 확성기 방송을 단계적으로 중단했다. 특히 정전협정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에서의 중화기 철수 등 남북 간 긴장완화를 겨냥한 실무적 합의가 1순위로 꼽힌다.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2㎞씩을 비무장지대로 설정하고 이곳에는 개인화기 외에는 반입을 금지하도록 한 정전협정을 준수하기로 양측이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남북이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 통신선을 복원하는 문제를 회담 테이블에 올릴 수도 있다.


남북관계 개선

세 번째 의제인 ‘남북관계 발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필요성의 공감대가 폭넓게 마련돼 있어 용이하게 합의를 볼 수 있는 분야라 할 수 있다.

두 정상은 70년째 분단된 남북이 그동안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민족 동질성 회복을 통해 통일의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인 면에서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그 연장 선상에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발표 직후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했다. 이후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그동안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선보였던 남북 예술단 공연과 태권도시범단의 정기적인 상호 방문에 합의 예술,문화,사회 분야 교류 확대에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경제협력 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겠지만,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그리고 남한 정부의 독자 제재가 유효한 상황이어서 구체적 합의를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대신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관광 재개도 논의할 수 있지만, 이 문제도 결국 비핵화의 전진이 어느 정도 이뤄져야 해결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상회담 정례화 등은 두 정상이 동의만 하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정상회담 정례화에 대해 좀 더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루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례화가 이뤄진다면 이미 설치된 ‘핫라인’과 함께 남북 관계의 획기적 진전을 위한 중요한 지지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이 대북제재 등으로 경제적인 분야의 합의는 제약이 따를 수 있지만, 정상회담 정례화 등은 두 정상이 마음만 통하면 합의가 가능하다”며 “자주 만나 대화하고 교류하면 얼었던 남북 관계에도 봄이 찾아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